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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오리진 (아포칼립스, 생존 서사, 인류 재건)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 마지막 생존자가 둘뿐이라면, 그 선택은 과연 '사랑'일까요, 아니면 '의무'일까요. 스페인 SF 영화 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습니다. 카탈루냐의 황량한 풍경 위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블록버스터처럼 폭발하지 않으면서도 꽤 오래 머릿속에 남는 종류의 영화입니다.아포칼립스, 스펙터클이 아닌 정서로 접근한 방식이 영화가 여타 아포칼립스(apocalypse) 장르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아포칼립스란 문명의 전면적 붕괴와 종말을 다루는 서사 장르를 뜻하는데, 보통은 대형 폭발과 스펙터클로 그 절망감을 표현하려 합니다. 반면 은 그 반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카탈루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세상은 .. 2026. 10. 1.
치명적이고 아름다운 (발레 액션, 인간병기, 토슈즈) 발레 공연 영상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 저 코어 근육이랑 하체 근력으로 싸우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이 영화로 나왔습니다. 발레리나들이 헝가리 시골 모텔에서 범죄 조직 일당을 전멸시키는 이 영화, 제가 보면서 내내 웃으면서도 소름이 돋았습니다.발레가 왜 '무술'이 될 수 있는가 — 신체 조건 분석발레를 운동으로 보는 시선이 아직도 낯선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직접 발레 체험 수업을 들어본 경험상 이건 완전히 오해입니다. 첫 수업에서 플리에(plié) — 무릎을 굽히면서 허리와 등을 완전히 수직으로 유지하는 기본 동작 — 를 20분 하고 나서 허벅지 안쪽이 사흘 동안 풀리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발레는 전신 근육을 동시에 정밀하게 제어하는 훈련입니다.특히 이 영화에서 주.. 2026. 9. 30.
플로우 리뷰 (동물 행동, 고증, 감동)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는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고양이 집사들을 울렸습니다. 라트비아 제작사 Gints Zilbalodis 감독의 는 2024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에 "대사 없는 영화가 얼마나 감동적이겠어" 싶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대사 없이 시작되는 세계 — 배경과 맥락영화는 인간이 사라진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집과 마을의 흔적은 남아 있는데 사람은 없고, 홍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상황 속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칩니다.저도 영화를 보면서 자꾸 "왜 인간만 없어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오히려 그 여백이 상상을 자극합니다. 집이 완전한 폐허는 아닌 것으로 보아 인간이 사라진 지 그.. 2026. 9. 29.
서브스턴스 (욕망, 자기혐오, 노화) 거울 앞에서 "그때 내가 제일 잘나갔는데"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물이 아닙니다. 《서브스턴스》는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스타가 한순간에 해고되면서 젊음을 되사려다 처참하게 무너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땐 그냥 기괴한 영화라고 넘겼는데, 두 번째 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욕망이 설계한 함정 — 서브스턴스라는 선택영화의 핵심 장치는 '서브스턴스(Substance)'라는 물질입니다. 여기서 서브스턴스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젊고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분열 촉진 물질로, 원래의 나와 새로운 나가 일주일씩 번갈아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육체가 두 개의 인격체로 쪼개지는 것이고, 둘은 하나의 몸을 공유합니다.주인.. 2026. 9. 28.
타임루프 단편영화 (영화 줄거리, 망상 심리, 반복 일상) 솔직히 처음엔 그냥 웃기려고 만든 코미디 단편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게 단순한 개그 영화가 아니더라고요. 자신이 타임루프에 갇혔다고 철석같이 믿는 남자 윌의 이야기인데, 반전이 꽤 묵직합니다. 우울증이나 현실 도피와 연결 지어 보면 또 다른 층위가 보이는 영화라,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의 기상천외한 일상을 다룹니다.엉뚱한 행동들과 그 속에 담긴 일상의 의미를 추적합니다.매일 같은 술집, 매일 같은 실패 — 이게 타임루프라고?영화 속 주인공 윌은 매일 아침 오줌범벅이 되어 잠에서 깨고, 매일 회사에 지각하고, 매일 같은 술집에서 같은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윌의 결론은 단 하나, "나는 타임루프에 갇혔다"는 것이었죠.제가 이 설정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달력 보면 날짜.. 2026. 9. 27.
최가박당 (버디무비, 홍콩영화, 흥행기록) 비디오 가게 사장님께 "들어오면 꼭 전화 달라"고 부탁까지 해뒀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케이스가 꽂혀 있는 날보다 거꾸로 뒤집혀 대여 중인 날이 더 많았던, 바로 1982년작 《최가박당(Aces Go Places)》입니다. 홍콩 영화 사상 최초로 박스오피스 2,000만 홍콩 달러를 돌파한 작품이자, 지금도 버디무비의 교과서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이 시절 대세 홍콩영화 잘나가던 홍콩 모습이 그대로 입니다.버디무비의 공식을 홍콩 방식으로 재조립하다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알던 홍콩 영화는 성룡 영화가 전부였거든요. 성룡처럼 몸을 날리는 액션을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결의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주성치의 무협지식 코미디, 성룡.. 202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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