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들이 온다는 말에 새 바비큐 그릴까지 장만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 모두 못 온다는 연락이 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났습니다. 영화 <에브리바디스파인(Everybody's Fine)>이 그런 영화입니다.
배경: 혼자 남겨진 아버지가 기차를 탄 이유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는 평생 전선 코팅 작업을 해온 노동자입니다. 직업적 노출로 인해 폐질환(pneumoconiosis), 쉽게 말해 유해 물질을 장기간 흡입해 폐 조직이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의사가 여행을 말리는 상황에서도 그는 기차에 오릅니다. 자식들을 직접 보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살아가던 프랭크에게 자식들이 찾아오기로 한 주말은 그야말로 큰 이벤트였습니다. 새 그릴을 사고, 장을 보고, 집을 청소하는 모습에서 설렘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부모님이 명절 전날 밤늦게까지 준비하시던 모습이 겹쳐 보여 멈칫했습니다.
프랭크가 찾아간 자식들은 뉴욕의 아들 데이빗, 딸 에이미, 지휘자라 알려진 아들 로버트, 그리고 막내딸 로지까지 총 네 명입니다. 각자의 삶에 치여 바쁜 자식들과 달리, 아버지는 기차를 갈아타고 택시를 타며 무려 전국을 횡단하는 여정을 이어갑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이, 약통 하나 들고서요.
감정분석: 부모가 처음이라서 생기는 균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치가 있습니다. 프랭크가 자식들을 만날 때마다 잠깐씩 어린 시절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입니다. 여기서 플래시백이란 현재 장면 중간에 과거 기억을 짧게 삽입해 감정의 낙차를 만드는 영화적 서술 기법으로,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눈에 자식은 늘 어린아이"라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일 먼저 울었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이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다릅니다. 데이빗은 마약 문제로 멕시코에서 사망했고, 로버트는 지휘자가 아닌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으며, 딸들도 각자 속사정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어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만, 아버지에게는 걱정시킬까 봐 다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로버트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어머니는 말하기 편했어요. 아버지는 항상 완벽하지 않으면 걱정하셨잖아요." 이 대사를 두고 어떤 분들은 아버지가 틀렸다고 보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프랭크가 나쁜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부모 역할이 처음이라 사랑하는 방식을 몰랐던 것이라고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 스타일(attachment style)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애착 스타일이란 유아기에 형성된 타인과의 정서적 연결 방식으로, 불안형 애착을 가진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와 걱정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프랭크의 엄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불안에서 나온 것이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감정 포인트
- 자식을 만날 때마다 등장하는 어린 시절 플래시백 — 부모의 시선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문다
- 프랭크가 데이빗의 갤러리에서 아들 작품을 발견하는 장면 — 자식의 삶을 뒤늦게 이해하는 아버지
- 로버트와의 흡연 장면 — 다그침과 화해가 어설프게 섞인 부자(父子) 관계의 민낯
- 데이빗의 그림 속에 아버지가 평생 코팅한 전선이 그려져 있는 결말 — 자식은 결국 부모를 이해하고 있었다
가족관계: 소통은 타이밍이 있다는 것
영화를 보고 나서 제 안에서 가장 오래 맴돈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대로 소통했더라면 달랐을까?" 저는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감정을 나누지 않고 다그치며 자란 가족 사이에서, 다 늙어 갑자기 솔직해지자고 하면 그 간극이 너무 큽니다.
프랭크의 경우가 딱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어머니에게는 다 말했지만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 그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것이었습니다. 가족 체계 이론(Family Systems Theory)에서는 이를 삼각화(triangulation)라고 부릅니다. 삼각화란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나 정보가 제삼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되는 역학을 말하는데, 프랭크 가족에서는 어머니가 그 중간 연결자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출처: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이 부분에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프랭크가 직접 찾아간 것만으로 이미 변화한 것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 장면에서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지만, 그건 해피엔딩이 아니라 "이제라도 시작"에 가깝습니다. 데이빗은 이미 없고, 아버지의 건강도 좋지 않으니까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현실적으로 더 와닿았던 건 형제자매들이 아버지 건강 상태를 서로에게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빠서 챙기지 못했다기보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습관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게 훨씬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입니다. 영웅적인 희생이나 극적인 화해가 아니라, 그냥 바빠서, 불편해서, 말 안 하는 것들이 쌓이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에브리바디스파인,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다시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저는 이걸 순수한 해피엔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큰아들 데이빗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프랭크의 건강도 좋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라도 솔직하게 살아보자"는 출발점으로서의 엔딩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Q. 로버트 드 니로가 이 영화에서 왜 그렇게 감동적인가요?
A. 과장 없이 그냥 늙은 아버지를 연기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억지로 감정을 짜내지 않는데 더 무너집니다. 특히 마트에서 장을 보며 설레하는 장면이나, 아들 갤러리에서 작품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대사 하나 없이도 다 전달이 됩니다. 저는 그 인자한 표정에서 제 아버지 얼굴이 보여서 더 힘들었습니다.
Q. 이 영화, 부모님이랑 같이 봐도 괜찮을까요?
A. 같이 보는 것을 권하는 분들도 있고, 오히려 혼자 보는 게 더 솔직하게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 먼저 보고 정리된 뒤에 부모님께 추천하는 방식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함께 보다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면 오히려 대화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Q. 데이빗의 그림에 전선이 그려진 이유가 뭔가요?
A. 프랭크가 평생 전선 코팅 일을 해온 것이 가족의 생계를 지탱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데이빗의 그림 속 전선은 "아버지의 삶을 나는 보고 있었다"는 고백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못 했던 아들이 그림으로 남긴 사랑 고백인 셈입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크게 울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또는 제가 부모의 자리에 서보게 된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눈을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사랑했는데 방식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부모도 처음이라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대로 살다가 프랭크처럼 자식들이 모든 걸 혼자 감추게 두는 부모가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라도 덜 요구하고, 더 들으려고 합니다. 영화 한 편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부모님 생각날 때, 조용히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