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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청춘 (학창시절, 성장통, 인성교육)

by 주머니 2026. 7. 3.

솔직히 저는 전소민을 예능에서만 봐왔던 터라, 이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2026년 신작 영화 '열여덟 청춘'은 시골 여고에 부임한 별난 선생님과 상처 입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요즘, 이런 소재가 얼마나 먹힐까 싶었는데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90년대 학창시절과 지금, 뭐가 달라졌나

일반적으로 요즘 교육 환경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저는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 전체를 줄 세워 단체기합을 주거나, 아무 이유 없이 손바닥을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체벌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손을 대면 즉시 경찰 신고로 이어지고, 학부모가 학교로 달려오는 시대입니다. 교권침해(敎權侵害)란 교사가 교육 활동 중에 받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뜻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이 교권침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만큼 교실 안 힘의 구도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오죽하면 넷플릭스에 '참교육' 같은 작품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렇다고 지금이 무조건 낫냐고 하면, 저는 그렇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체벌 없이 자란 세대에서 미성년자 범죄율이 오히려 올라가는 추세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소년범죄 관련 지표를 보면, 강력범죄 비율이 단순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압으로 아이를 억누르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울타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전소민이 연기한 희주,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른 이유

영화 속 담임 희주는 부임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선언합니다. 잔소리는 없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핸드폰도 안 걷겠다고. 처음엔 무책임한 선생님처럼 보이지만, 이게 사실 굉장히 계산된 태도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됩니다. 교사-학생 간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래포(Rapport) 형성, 즉 신뢰 관계를 의도적으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래포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쌓이는 정서적 유대감을 의미하며,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수업도 아이들에게 닿지 않습니다.

희주가 진행하는 카드 버리기 수업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멘토, 자기 자신을 카드에 적고 하나씩 버려가면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건 심리교육(心理敎育), 즉 감정과 자아를 이해하는 훈련을 수업 형태로 녹여낸 것인데, 저는 이 장면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 닮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희주 캐릭터가 어른다움이 좀 부족하지 않냐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거리를 좁히려다 보니 선생님이라기보다 언니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있었거든요. 제 경험상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다가오면서도 선을 지킬 줄 아는 분이었는데, 그 균형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전소민이 이 역할을 이렇게 잘 소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예능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보다 보니 캐릭터가 전소민에게 찰떡같이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영심이'의 엉뚱하지만 따뜻한 주인공이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순정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인성교육의 빈자리

주인공 순정은 체육 시간에만 살아나는 아이입니다. 존재감이 거의 없고, 야간자율학습(야자)은 매일 빠지며, 엄마는 술과 남자에 의존하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세상에 마음을 닫아버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순정의 상황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장애(Attachment Disorder)와 맞닿아 있습니다. 애착장애란 어린 시절 안정적인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모로부터 일관된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타인을 신뢰하겠습니까. 순정이 학교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분풀이하는 장면이 그냥 일탈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교육이 지식 전달에만 치중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드는 것과 인간다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인성교육진흥법(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학교는 예절·존중·배려 등 핵심 가치를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교실에서 그게 얼마나 살아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래는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인성교육과 관련해 다시 생각하게 된 지점들입니다.

  1. 공부 성적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가정 환경이 무너진 아이에게 학교가 마지막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사들이 인식해야 합니다.
  3. 처벌과 방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관계 맺기'가 진짜 교육의 핵심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는 왜 항상 상영관이 적을까

일반적으로 좋은 영화는 흥행도 잘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습니다. 소소하고 따뜻한 소재의 국내 영화들은 상영관 수에서 이미 불리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열여덟 청춘'도 솔직히 흥행보다는 입소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마케팅 파워 없이 스크린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스크린 독과점(Screen Monopoly)이란 특정 대형 상업영화가 전체 상영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구조 안에서 작은 영화들은 개봉 첫 주를 버티지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게 늘 씁쓸합니다. 자극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세상에서, '열여덟 청춘' 같은 작품이 3주도 못 가 사라진다면 정말 아깝습니다.

아이들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어색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점은 저도 느꼈습니다. 단순히 모든 걸 만족하는 영화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기에 좋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확신이 섭니다. 특히 요즘처럼 서로 할 말이 없어진 가족 관계에서, 영화 한 편이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꽤 오래 생각에 잠겼습니다. 좋은 선생님 한 명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제 학창시절에 희주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무조건 강압으로 눌러서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교육이 있을 겁니다. '열여덟 청춘'은 그 지점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짚어내는 작품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eYSc3Zu4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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