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 그냥 <새벽의 저주>를 흉내 낸 B급 패러디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근데 막상 틀어보니 요즘 나오는 좀비영화들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2004년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는 좀비 장르의 클리셰를 비틀면서도 영국 특유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풍자한 수작입니다.
좀비와 직장인, 대체 뭐가 다른가 — 일상 풍자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감탄한 장면은 도입부였습니다. 주인공 숀이 매일 같은 길로 편의점에 가고, 같은 술집 윈체스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 카메라는 그 동선과 똑같이 비틀비틀 걸어 다니는 좀비들을 비춥니다. 이거나 저거나 대체 뭐가 다르냐고 직접 묻는 장면인 거죠.
이걸 영화 이론에서는 시각적 병치(visual juxtaposi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시각적 병치란,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나란히 배치해 관객 스스로 의미를 연결하게 만드는 연출 기법입니다. 대사 없이도 "당신도 이미 좀비처럼 살고 있지 않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인데, 제가 직접 두 장면을 나란히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습니다.
숀의 룸메이트 에드는 직업도 없이 매일 게임만 하고, 또 다른 룸메이트 피트는 그걸 못마땅해합니다. 숀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자친구 리즈에게 항상 똑같은 데이트만 반복하다 이별 통보를 받고, 새아버지 필립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죠.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이미 이 남자의 삶은 멈춰 있었던 겁니다.
- 매일 반복되는 편의점 동선 → 좀비의 배회 동선과 동일하게 편집
- 무기력한 룸메이트 에드, 예민한 피트, 정체된 숀 — 좀비 사태 전부터 각자 방식으로 '멈춰 있는' 인물들
- 이별 통보, 새아버지와의 갈등 — 좀비 사태와 나란히 진행되는 숀의 개인적 위기
B급인 줄 알았는데 — 복선 회수의 완성도
일반적으로 코미디 호러 장르는 웃음에 집중하느라 서사 밀도가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복선을 회수하는 방식이 기막혀서, 두 번째 볼 때 도입부가 전혀 다르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대표적인 게 윈체스터 펍에 걸린 총입니다. 처음엔 그냥 인테리어 소품인 줄 알았는데, 클라이맥스에서 실제로 쓰이면서 "아 저게 진짜였구나" 하는 반응이 절로 나왔습니다. 또 도입부에서 여자 좀비들한테 둘러싸여 시식 코너 취급받는 남자가 있는데, 알고 보면 젊을 때 윈체스터에서 여자 꽤나 후렸던 단골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이런 디테일이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유는, 그냥 개그가 아니라 캐릭터의 과거까지 연결된 복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놀랐던 건 경찰차 사이렌 연출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숀이 걷는 장면에서는 빠짐없이 경찰차 소리가 깔립니다. 그런데 좀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소리가 싹 사라집니다. 이게 처음엔 눈치채기 어렵지만, 알고 나면 "사회 시스템이 이미 무너졌다"는 신호를 청각적으로 암시한 겁니다. 복선(foreshadowing) — 즉, 이후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서사 장치 — 을 이렇게 소리로 구현한 건 제가 본 좀비 영화 중에 처음이었습니다(출처: IMDb, Shaun of the Dead(2004)).
영국 남자의 루틴과 좀비 사태 — 펍 문화와 섬나라 정서
그냥 좀비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전형적인 영국 남자의 생활에 좀비 사태가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유쾌한 상상력의 영화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흥미로웠던 건 이 부분이었습니다.
영국 남자들에게 퇴근 후 펍에서 파인트 한 잔 하는 건 일상의 루틴(routine)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루틴이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반복 행동 패턴을 의미합니다. 그 틀이 얼마나 강력한지, 좀비 사태가 터졌는데도 숀이 "일단 윈체스터로 가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계획을 세우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답답하면서도 어딘가 공감이 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 시각에서는 이 모습이 일본 가장들이 퇴근 후 선술집에서 혼자 한 잔 걸치는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도박이나 비싼 취미가 아닌, 그 소박한 틀 안에서 가장의 역할을 끝까지 해내는 섬나라 특유의 강인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뭐, 그게 동시에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이기도 하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 아이러니이기도 하고요.
사망 플래그 드리프트와 군대 묘사 — 장르 클리셰를 비트는 방식
이 영화가 진짜 대단하다고 느낀 또 다른 지점은 사망 플래그(death flag) 처리 방식이었습니다. 사망 플래그란 장르 영화에서 "이 캐릭터는 곧 죽겠구나"라고 관객이 직감하게 만드는 서사적 신호를 말합니다. 보통 좀비 영화에서는 가장 용감하게 나서는 캐릭터나 분리된 캐릭터가 죽는 공식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공식을 아예 드리프트 해버립니다.
숀 일행과 별도로 움직이는 이본의 그룹은 화면에 잠깐씩만 등장하는데, 끝에 가서 보면 전원 생존입니다. 반면 숀 일행은 계속 함께 다니면서도 하나둘씩 잃어 갑니다. "모여 있어야 안전하다"는 장르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거죠. 제가 처음 이 결말을 봤을 때 잠깐 멍했을 정도였습니다.
군대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에서 군대는 늦게 오거나, 오더라도 혼란스럽거나, 심지어 또 다른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의 군대는 달랐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군인들이 등장하자마자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그리고 클-린하게 좀비들을 처리해 버립니다. 장르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하면서 웃음과 안도를 동시에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장르 해체 능력에 대해서는 영화 학계에서도 꾸준히 다뤄지는 주제입니다(출처: BFI(영국영화협회), Shaun of the Dead).
자주 묻는 질문
Q.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새벽의 저주 패러디 영화인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가 새벽의 저주(2004)와 같은 해 개봉했고, 제작 시점으로 보면 패러디가 아닌 독립적인 오리지널 작품입니다. 제목의 유사성 때문에 생기는 오해인데, 두 영화는 장르적 접근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Q. 좀비 영화 처음 보는 사람도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좀비 장르 입문작으로는 이 영화가 꽤 좋은 선택입니다. 잔인한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수위가 낮고, 코미디 요소가 공포감을 상당 부분 완화해줍니다. 좀비 장르 특유의 긴장감과 유머를 동시에 맛볼 수 있어서 거부감 없이 접근하기 좋습니다.
Q. 복선이 많다던데 두 번 봐야 다 보이나요?
A. 솔직히 한 번만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두 번째에서 보이는 게 확실히 다릅니다. 경찰 사이렌이 사라지는 타이밍, 윈체스터 총의 등장, 특정 인물의 행동 등이 첫 번째 시청 때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디테일들인데, 알고 나면 도입부부터 복선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Q.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다른 영화도 이런 스타일인가요?
A.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콘웰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여기서 콘웰 3부작(Cornetto trilogy)이란 배우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와 함께 만든 Hot Fuzz, The World's End까지 세 편을 묶어 부르는 명칭입니다. 세 편 모두 장르 클리셰를 비틀고 복선 회수를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이라,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나머지 두 편도 비슷한 만족감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코미디인데 수작이다. 보통 이 두 단어는 잘 붙지 않는데,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그 어색한 조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립니다. 시각적 병치, 청각 복선, 사망 플래그 역이용까지 — 영화를 단순히 재미로만 만들지 않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좀비 장르를 어느 정도 알고 보면 더 웃기고, 모르고 봐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시청 방법은 한 번은 그냥 즐기고, 두 번째엔 복선을 찾으면서 보는 겁니다. 도입부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