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지력이 강한 사람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한 편이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뉴욕에서 매표소 알바로 간신히 월세를 내던 여성이 1년 만에 뉴욕 마라톤을 완주하는 이야기, 2019년작 브리트니 런즈 어 마라톤입니다. 화려한 드라마는 없습니다. 대신 "그래, 나도 저랬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첫 한 블록 — 시작이 완주보다 더 힘든 이유
일반적으로 마라톤 완주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 주인공 브리트니는 인터뷰에서 "42km를 뛰는 것보다 처음 사람들 눈총을 받으며 한 블록을 뛰는 게 더 힘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솔직히 이 말이 가장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영화 속 브리트니는 200m도 채 안 되는 한 블록을 겨우 뛰고 온몸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기분이 "꽤 나쁘지 않았다"고 표현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새해마다 목표를 세우고 며칠 못 가서 흐지부지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라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의 심리적 장벽이었습니다.
행동과학에서는 이를 행동 활성화 임계값(Behavioral Activation Threshold)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행동 활성화 임계값이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심리적·신체적 에너지의 최솟값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귀찮음의 벽"입니다. 이 벽이 높을수록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브리트니가 한 블록이라는 아주 작은 목표로 이 벽을 낮춘 것처럼, 시작의 단위를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잡으면 몸이 먼저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반면 "딱 10분만", "딱 한 블록만"이라고 마음먹으면 어느새 그 이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건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꾸준히 권하는 방법입니다.
- 시작 단위를 최대한 작게 설정할 것 (200m, 10분, 한 페이지)
- 첫날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일단 나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을 것
- 타인의 시선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 것 — 실제로 남들은 생각보다 훨씬 무관심합니다
습관 형성 — 100일 법칙은 진짜일까
흔히 21일이면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 말을 믿고 3주를 버텼다가 바로 무너진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 연구 결과는 훨씬 현실적입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필리파 랠리 박사 연구팀이 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행동이 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평균 66일이 걸렸으며, 사람에 따라 18일에서 254일까지 편차가 컸습니다(출처: University College London). 여기서 자동화(Automaticity)란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몸이 알아서 행동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안 하면 오히려 어색한" 상태입니다.
브리트니는 6주째부터 러닝 모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6주, 즉 약 42일 시점부터 자동화 초기 단계에 진입한 셈입니다. 제가 책에서 읽은 100일 법칙은 이 자동화가 완전히 굳어지는 시간을 넉넉히 잡은 수치로 보입니다. 과학적 평균치인 66일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으니, 어느 쪽이든 "3주면 된다"는 믿음보다는 훨씬 현실에 가깝습니다.
제가 실제로 효과를 본 방법은 처음 한 달은 목표량을 아주 낮게 잡고 매일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달부터 몸이 익숙해진 것이 느껴지면 조금씩 양을 늘렸습니다. 부작용 없이 적응할 수 있었고, 중간에 포기하는 일도 줄었습니다. 이 방법을 주변에 권했더니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오히려 번아웃(Burnout), 즉 동기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는 상태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애 — 변화는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감독은 직접 이 영화를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달리기 영화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서 한참을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브리트니는 처음 의사에게 심각한 경고를 듣고도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어쩔 수 없는 나'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낮은 상태였던 겁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정립한 개념으로, 이 믿음이 낮으면 시작 자체를 포기하거나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무너집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 경험상 이건 의지력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한동안 "원래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자신을 규정하는 게 가장 편하거든요. 바꾸려는 시도를 안 해도 되니까요. 그 착각을 깨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브리트니도 마라톤 완주 이후 광고 기획자로 새 삶을 시작합니다. 달리기가 직업을 바꾼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모든 것을 바꾼 겁니다. 주변을 보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그걸 늦게 깨달은 편인데, 그 에너지를 외부 시선에 쓰지 않고 자신에게 쓰기 시작하면 행동도, 결과도 달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브리트니 런즈 어 마라톤은 실화인가요?
A. 네, 실화입니다. 감독의 실제 친구인 브리트니를 모델로 제작된 2019년 영화입니다. 영화 말미에 실제 인물 브리트니가 등장하며, 현재는 광고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됩니다. 일반적으로 실화 영화는 극적 연출을 위해 과장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담담하고 소소한 일상에 가깝게 그려졌습니다.
Q. 운동을 꾸준히 못하는 사람도 습관을 만들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큰 목표를 잡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경험상 첫 한 달은 목표량을 아주 낮게 설정하고 '매일 한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방법이 효과적이었습니다. UCL 연구 기준으로 평균 66일이면 행동 자동화가 시작되므로, 처음 두 달을 버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Q. 의지력이 약해도 마라톤 같은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A. 브리트니 런즈 어 마라톤이 말하는 핵심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완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 환경과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며 해내는 이야기입니다. 자기효능감을 서서히 높이는 방식, 즉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 의지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영화에서 러닝 크루가 중요하게 나오는데, 혼자 해도 되나요?
A. 혼자도 가능하지만, 영화 속 브리트니가 크루 덕분에 포기를 멈춘 장면들을 보면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의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지지란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함께하는 환경이 개인의 지속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말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오프라인 모임이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함께할 대상을 하나 만들어두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결론
브리트니 런즈 어 마라톤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의지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새해 목표를 매년 반복해서 실패하는 사람,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 첫 발을 못 내딛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정리하면, 변화의 크기보다 변화의 시작이 중요합니다. 첫 한 블록을 뛰는 것, 오늘 딱 10분 실행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믿어가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목표의 크기를 줄여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