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Amazon Women on the Moon, 1987)'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그냥 B급 SF물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서는 분량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짧고 강한 에피소드들이 연속으로 터지는 통에 멈출 타이밍을 놓쳐버린 겁니다.
1980년대 미국 TV 문화를 풍자한 스케치 코미디 영화인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 알차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습니다. 요즘 OTT 시대에 살면서 잊고 있던 감각이랄까, 오래된 웃음인데 이상하게 안 촌스럽습니다.
병맛 에피소드들, 근데 전부 맛있음
이 영화는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옴니버스란 독립된 여러 단편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 안에 묶어놓은 구성 방식으로, 각 에피소드가 서로 다른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틀은 리모컨 하나로 TV 속에 빨려 들어간 아저씨인데, 이 아저씨가 야구, 뮤직비디오, 괴수 영화 등 다양한 채널을 직접 체험하는 설정이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좀 웃겼던 건, 결말에서도 끝내 TV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어거스터스 굽이 파이프에 빨려 들어가듯, 이 아저씨도 그냥 채널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거죠.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첫 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여자가 남자의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하는 장면인데, 그 신분증에서 과거 여성에게 날렸던 멘트 횟수, 뻐꾸기 시도 기록까지 다 출력되는 설정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출연 배우도 나중에 알고 보니 로잔나 아퀘트였는데, 젊은 시절 얼굴이 꽤 인상적이었고 형제들도 유명 배우 집안이라는 걸 나중에 찾아봤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건 '레이' 에피소드입니다. 비디오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은밀하게 화끈한 작품을 추천하는데, 점점 빠져드는 레이에게 남편이 들이닥치는 전개가 클래식한 병맛 코미디의 정수였습니다. 주인공 배우가 클래식 슈퍼맨 시리즈의 지미 올슨 역을 맡았던 분이라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옛날 영화는 이렇게 아는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가 진짜 솔솔 합니다.
- TV 채널 체험 아저씨 — 전체를 연결하는 틀 역할, 결국 TV에서 못 나옴
- 소개팅 신분증 에피소드 — 로잔나 아퀘트 출연, 과거 뻐꾸기 기록까지 출력
- 비디오 가게 레이 에피소드 — 클래식 슈퍼맨 지미 올슨 배우 주연
- 17세 청년 사랑용품 구입기 — 약국 행사로 비밀이 완전히 날아가는 결말
- 투명인간 실험 에피소드 — 성공했지만 실상은 그냥 민폐 수준
고전 코미디가 이렇게 안 낡을 수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TV를 돌리다가 AFKN 채널을 봤던 기억입니다. 그 당시 한국은 채널이 KBS1, KBS2, MBC, EBS, AFKN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SBS는 아직 없던 시절이었죠. 미국 채널을 보면서 '와, 미국은 저렇게 채널이 많아?'라며 입을 벌렸던 그 느낌이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TV가 단순히 보는 물건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처럼 느껴지던 시대의 감성입니다.
영화 안에 등장하는 소품들을 보면서 또 한 번 감회가 새로웠는데, CRT TV(브라운관 텔레비전)와 VCR(비디오카세트 레코더), 유선전화가 그대로 나옵니다. CRT TV란 음극선관을 이용해 화면을 출력하던 방식의 구형 텔레비전으로,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죠. VCR은 자기 테이프에 영상을 녹화·재생하는 장치입니다. 요즘 세대에게는 완전히 낯선 물건들이지만, 저에게는 그 시절 거실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처럼 보여서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한 옛날 코미디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캐스팅입니다. 당시 폴리스 아카데미 시리즈로 최전성기였던 스티브 구텐버그, 미셸 파이퍼, 캐리 피셔, 아세니오 홀, 조 판톨리아노까지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이러니한 건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 그러니까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구급 대원 역으로 잠깐 나온다는 겁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출연작으로 이 영화를 꼽았다고 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억울한 평가입니다. 영화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시대가 그랬던 것뿐이거든요.
스케치 코미디의 계보, 존 랜디스와 병맛의 역사
이 영화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1977년 작품인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The Kentucky Fried Movie)'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는 스케치 코미디(Sketch Comedy) 형식을 극장 영화에 이식한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스케치 코미디란 짧은 설정과 반전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연속으로 이어 붙이는 코미디 장르로, TV 버라이어티 쇼에서 발전한 형식입니다. 이걸 연출한 존 랜디스 감독이 약 10년 뒤 조단태 등 다른 감독들과 손을 잡고 만든 비공식 속편이 바로 오늘의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입니다.
재밌는 건 제목을 정하는 과정입니다. 전편과의 판권 확보에 실패하면서 새 제목이 필요했는데, 후보 목록이 상당히 가관이었습니다. '털린 꼬리들', '고기 먹는 꿈', '타이어 자국' 같은 황당한 후보들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결국 영화 안 에피소드 중 하나의 제목인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이 최종 타이틀이 됐습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 선정 과정 자체가 이미 병맛이라 더 좋았습니다.
이 영화가 풍자한 건 당시 미국의 TV 광고와 B급 쇼 문화입니다. 파로디(Parody)라는 장르적 특성상, 원본이 낯설수록 웃음의 밀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제가 직접 봤을 때는 그 맥락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재밌었습니다. 파로디란 기존 작품이나 문화 현상을 과장·왜곡해 웃음을 유도하는 기법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가짜 광고, 가짜 예고편, 체험형 영화관 등 다양한 포맷을 활용해 당시 TV 매체 자체를 통째로 비틀어버립니다(출처: IMDb - Amazon Women on the Moon).
가끔은 정말로 이런 인스턴트 같은 요즘 코미디보다 이런 고전이 그립습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가진 것들로 어떻게든 웃음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 더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당시 미국 TV 산업이 얼마나 포화 상태였는지는 기록으로도 확인됩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가정의 케이블 TV 가입률은 이미 40%를 넘어섰으며, 채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습니다(출처: FCC - Cable Television Overview). 이 영화는 바로 그 풍경을 정면으로 비틀어 코미디로 만든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국내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정식 서비스 여부가 불규칙합니다. 제가 찾아봤을 때는 해외 VOD 플랫폼 쪽이 더 수월했습니다. 1987년 작품이라 저작권 유통 경로가 복잡한 편이니 직접 검색해 현재 서비스 상태를 확인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Q.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랑 뭐가 다른가요?
A.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는 극장 영화 자체를 패러디 대상으로 삼았다면,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은 TV 쇼와 비디오 문화를 풍자 대상으로 옮겨왔다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존 랜디스 감독이 둘 다 관여했지만, 속편은 여러 감독이 에피소드를 나눠 맡은 구조라 색깔이 조금씩 달라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다채롭게 느껴졌습니다.
Q.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이 영화에 나온다고요?
A. 맞습니다. 데뷔 초반 구급 대원 역으로 잠깐 등장합니다.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본인도 지우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하는데, 제 경험상 이런 초기 출연작 찾아보는 재미가 옛날 영화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Q.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정신없지 않나요?
A. 실제 영화에는 23개 에피소드가 들어 있어서 처음엔 정신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짧게 끊기는 구조라 오히려 지루할 틈이 없고, 하나가 별로여도 금방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보다 계속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결론
달 위의 아마존 여인들은 1987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웃음의 밀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건 유선전화, VCR, CRT TV 같은 물건들이 그냥 소품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스마트폰이 있듯, 그때 그 사람들은 그 장비들로 충분히 풍요롭게 살았고, 그 문화를 대상으로 치열하게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스트리밍 시대에 넘쳐나는 코미디 콘텐츠에 질렸다면, 오히려 이런 고전 스케치 코미디 형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까지 이어서 보면 존 랜디스가 10년에 걸쳐 어떻게 병맛 코미디를 진화시켰는지 그 흐름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