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뭄바이의 집창촌 카마티프라(Kamathipura)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로, 전성기에는 수만 명의 여성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2022년 영화 <강구바이 카티아와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한 실화 기반 드라마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그 시대 인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었던 '생존의 논리' 자체였거든요.
카마티프라, 그곳이 지옥이 된 이유
영화는 강구바이라는 인물이 카마티프라에 팔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좋은 집안 출신인 그녀는 뭄바이에서 발리우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남자친구를 따라 상경했다가, 그 남자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성매매 업소에 팔려갑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를 보면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카마티프라의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니, 도망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트래피킹(trafficking), 즉 인신매매는 피해자를 물리적으로만 가두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트래피킹이란 사람을 속이거나 강제로 이동시켜 노동이나 성매매에 착취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당시 카마티프라에서는 여성들이 '빚'이라는 명목으로 묶여 있었는데, 업소 측이 처음 '구매 비용'을 빚으로 전환해 평생 갚게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이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었고, 빚은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출처: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전 세계 인신매매 피해자의 약 72%가 여성과 아동이며, 그중 상당수는 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를 보고 나서 영화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 카마티프라는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 형성된 성매매 집결지로, 뭄바이 도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 피해 여성들은 '빚 구조'로 묶여 자력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 당시 인도 여성에게는 혼자 취업하거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명예살인이라는 벽,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나
"강구바이가 진짜 여성들을 위했다면, 매춘을 그만두게 하고 자유롭게 풀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질문이 당시 인도의 사회 구조를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핵심은 명예살인(honor killing)입니다. 명예살인이란 가족이나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친족이 직접 살해하는 관습으로, 당시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묵인되었습니다. 납치당해 성매매 업소에 팔렸다는 사실이 본인 의지와 무관하더라도, 집을 나가 '몸을 더럽혔다'는 의심만으로 가족이 여성을 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조선 시대 과부나 이혼 여성이 친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과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한국이라고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거죠. 다만 인도에서는 거기에 '살해'까지 더해진 형태였습니다.
영화 안에서도 이 현실이 직접 드러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린 소녀에게, 강구바이는 자신의 돈으로 몸값을 치르고 집으로 보내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구바이가 여성들을 무조건 붙잡아 둔 게 아니라, '살고 싶다'는 의지가 확인된 사람에 한해 길을 열어줬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UN Women에 따르면 명예살인은 현재도 전 세계에서 연간 수천 건 발생하며,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이 수치가 '과거 인도'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포주에서 지역 대표로, 강구바이가 택한 방식
강구바이 카티아와디는 실존 인물입니다. 1960~70년대 뭄바이에서 실제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며 동시에 카마티프라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여성으로, 당시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에게 직접 청원을 넣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마담(madam) — 즉 업소 운영자 — 이 된 과정은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마담이란 성매매 업소의 관리·운영권을 가진 여성 포주를 뜻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강구바이는 이후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처음 봤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해자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강구바이는 뭄바이 마피아 보스 라힘과 협상해 여성들을 보호하는 테두리를 만들었고, 지역 선거에까지 출마해 카마티프라 철거 소송에 맞섭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연설 장면입니다. 기자가 써준 원고를 찢고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분노'보다는 '지독한 현실 감각'이었습니다. 그녀는 감동적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거든요.
자신의 사랑마저 포기하면서 성매매 업소의 어린 딸을 결혼으로 내보내는 장면도, 처음엔 '지나친 희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구조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을 건져내는 것이 그 시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을 겁니다. 이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영화 전체가 다르게 읽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강구바이 카티아와디는 실화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강구바이는 1960~70년대 뭄바이 카마티프라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인물로, 작가 후세인 자이디의 논픽션 책 <마피아 퀸스 오브 뭄바이>에 그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화 기반 영화는 과장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경우 실제 역사가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Q. 강구바이가 여성들을 풀어주지 않은 건 나쁜 거 아닌가요?
A. 단순히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명예살인이 사회적으로 묵인되었고, 집을 나간 여성은 가족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팔려온 여성을 그냥 거리로 내보내면 굶거나 다른 업소로 다시 팔려갈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강구바이는 돌아가길 원하는 여성에게는 직접 몸값을 지불해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Q. 카마티프라는 지금도 존재하나요?
A. 현재도 뭄바이에 카마티프라는 존재하지만, 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습니다. 도시 개발과 NGO 활동, 법 개정 등으로 집결지 형태가 변해왔습니다. 다만 성착취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며, 형태가 분산되거나 지하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현지 연구자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Q. 이 영화, 자극적이거나 불편한 장면이 많나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예상보다 직접적인 묘사는 많지 않았습니다. 발리우드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감각적인 연출과 음악이 많이 사용되어 있고, 폭력이나 성적 장면은 암시적으로 처리된 편입니다. 다만 주제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심리적 불편함은 충분히 있습니다.
결론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붙들고 있던 질문은 "강구바이는 선한 사람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 그 구조 안에서 이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무엇이었는가"였습니다. 두 질문은 전혀 다릅니다.
명예살인, 인신매매, 성착취라는 구조적 폭력 안에서 살아남은 여성이 그 구조를 완전히 뒤엎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건, 제 경험상 당시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시각입니다. 강구바이가 선택한 방식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움직인 방향은 분명히 여성들의 생존과 존엄 쪽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카마티프라가 '과거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조적 성착취와 명예 기반 폭력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영화와 함께 실제 카마티프라의 역사를 다룬 자료들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복잡하고, 그래서 더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